'한국은행 독립성 논란' 부른 반세기 전 보고서…원본은 어디에

입력 2015-05-08 20:43  

[ 김유미 기자 ] 1950년 영문으로 된 63쪽짜리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제목은 ‘한국 중앙은행 개편에 대한 자문 보고서’. 작성자의 이름을 따 ‘블룸필드 보고서’라고 불린다. 이 오래된 자료를 놓고 10년 넘게 진실게임이 벌어지고는 했다. 심지어 몇몇은 65년 전 잉크가 묻은 ‘원본’을 찾으려고 한국과 미국을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이른바 ‘블룸필드 미스터리’다.

블룸필드 보고서는 한국은행(사진) 설립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다. 광복 이후 정부는 한국에 맞게 중앙은행 제도를 개편해야 했다. 한국은 1949년 미국 중앙은행으로부터 전문가를 초빙했다. 뉴욕연방은행 국제수지과장이던 블룸필드 박사와 감사과장 대리 젠슨이 한국에 들어와 6개월간 조사했다.

이들은 1950년 2월 한국 중앙은행 개편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것이 블룸필드 보고서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한은법 초안을 만들었고 국회가 이를 통과시켰다. 그렇게 제 역할을 다 한 보고서가 새삼스럽게 조명받은 것은 2005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직생활 회고록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발간했다. 여기서 강 전 장관은 문제를 제기한다. 한은법이 블룸필드의 당시 자문 내용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1950년 블룸필드 박사가 직접 써서 정부에 제출한 ‘원본’은 6·25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고록을 쓰기 전 강 전 장관은 당시 기재부 관료들에게 원본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원본이 소실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한은에 불리한 내용이어서 한은이 지하금고에 숨겨놓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도서관에서 블룸필드 보고서를 찾아냈다. 이 역시 블룸필드 박사가 직접 쓴 원본은 아니다. 블룸필드 박사가 1951년 미국에서 인쇄한 50권의 책자 중 한 권이다. 원본과 내용은 같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 책자를 토대로 강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서의 권고에는 ‘한은에 금융통화위원회를 둔다’는 규정이 없었는데 한은법엔 추가됐다. 한은의 로비로 잘못된 내용이 들어갔다. 금통위는 행정 행위를 하는 조직이므로 정부와 독립된 한은의 내부조직으로는 둘 수 없다.”

이는 정부로부터 한은의 ‘독립성’을 부인하는 것이어서 한은은 발끈했다. 2011년 당시 한은 워싱턴 소장이던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장은 ‘숫자 없는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강 전 장관이 입수한 책자는 사실 한은 도서관에도 50년 넘게 보관돼 있었다. 차 원장은 “예전부터 대학 교재로 쓰일 만큼 알려진 자료였다”며 “한은에 불리한 내용도 아니었고 숨길 이유도 없었다”고 뽀杉? ‘사라진 원본의 내용을 찾았다’던 강 전 장관이 머쓱해 할 만한 상황이었다.

한은은 지난 4일 ‘한은법 제정 자료집’을 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한은이 새롭게 입수한 블룸필드 보고서의 ‘복사본’이다. 1950년 블룸필드 박사는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는 한편 이를 베낀 복사본을 미국 정부에도 보냈다. 한은은 이 복사본이 최근 기밀문서에서 벗어나자 미 국립문서관리청에서 입수했다.

제정 자료집 2권 167쪽을 보면 ‘한은은 7명으로 구성된 금통위 지시에 따른다’는 블룸필드 박사의 권고가 나와 있다. 한은 관계자는 “강 전 장관은 보고서에 ‘한은이 금통위를 둔다’는 내용이 없다고 하지만 이 문구를 보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여러 사람의 연구에 의해 진실게임이 끝맺을 순서다.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 원본은 어디로 간 것일까. 1950년 정부에 제출됐으니 기재부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이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소실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제정 자료집 정리를 맡은 한은 관계자는 “한은도 복사본 정도는 받았을 텐데 보관을 제대로 못한 책임은 똑같다”며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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